노을 극장 — 제6화. 오지 않는 상영

두 번의 토요일이 더 지나갔다.
상영이 없는 토요일은 이상하게 길었다. 사람은 기다릴 게 있으면 일주일을 견디고, 기다릴 게 없으면 하루도 길다. 나는 매일 저녁 공터에 내려갔다. 이제는 산책이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그냥 갔다.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하는 마음이 발을 끌었다. 어쩌면은 참 질긴 마음이다. 가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을 자꾸 같은 자리로 데려간다.
공터는 늘 비어 있었다. 스크린만 그대로 걸려, 낮에는 늘어지고 밤에는 바람에 울었다. 나는 텅 빈 나무 단에 혼자 앉아, 옆자리를 봤다. 사람이 있던 자리는 없어져도 모양이 남는다. 나는 그 모양을 매일 확인하러 갔다. 확인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부재를.
할머니 집 마당 끝에 서면 방파제와 공터가 내려다보였다. 밤이면 그 자리에 불이 없었다. 여름 내내 토요일이면 스크린 불빛이 켜졌었는데, 이제는 검은 얼룩처럼 어둠에 묻혀 있었다. 나는 그 어둠을 오래 봤다. 불이 꺼진 극장은 극장이 아니라 그냥 빈 공터였다. 사람이 오지 않는 자리는 그렇게 빨리 원래대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름 한 철이 통째로 없던 일이 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웠다. 없어지는 것보다, 없던 일이 되는 게. 사람은 잃은 건 슬퍼하기라도 하는데, 없던 일이 된 건 슬퍼할 수조차 없다. 슬퍼하려면 그게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없던 일에는 인정할 대상이 없으니까. 나는 이 여름이 없던 일이 되는 게 싫었다. 릴을 걸던 손도, 미지근한 사이다도, 셔터 소리도, 다 있었던 일로 남기고 싶었다.
어귀의 박 씨 사진관 앞을 지날 때였다. 노인이 유리문을 열고 나오며 나를 불렀다.
"학생. 그 총각 요새 통 안 보이대?"
"…네."
"이상허네. 여름 내내 필름 맡기던 애가, 뚝 끊겼어. 아프기라도 한가." 노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도로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온 마을이 그의 부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필름을 맡던 선반도, 영사기 옆자리도, 사진관 노인도, 그리고 나도. 사라진 사람은 없는데, 없어진 자리는 이렇게 많았다.
✦ ✦ ✦
그날 밤, 소영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나는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소영은 목소리만으로도 내 상태를 읽는 애였다. 얼굴까지 보이면 다 들킬 게 뻔했다. 그런데 벨이 끊기기 직전에,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라도 붙잡고 싶은 밤이었던 것 같다.
화면에 소영의 얼굴이 떴다. 자취방 형광등 아래, 늘 그렇듯 환하고 씩씩한 얼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코끝이 시큰했다. 여름 내내 목소리로만 듣던 친구의 얼굴을, 나는 오랜만에 봤다.
"야, 얼굴이 왜 그래." 소영이 대뜸 말했다. "너 무슨 일 있지."
"…없어."
"있어. 유하경, 나 너랑 십 년이야. 화면 너머로도 다 보여." 소영이 얼굴을 화면 가까이 들이밀었다. "말해. 그 사람이지."
나는 결국 말했다. 여름 내내 반만 하던 이야기의 나머지 반을. 릴을 잡은 것도, 연락처를 안 묻기로 한 것도, 방파제에서의 밤도, 극장이 없어지게 된 것도, 그리고 그가 이 주째 사라진 것도. 소영은 중간에 끊지 않고 다 들었다.
"…야." 소영이 먼저 입을 뗐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너 그 여름 진짜 제대로 빠졌구나."
"빠지긴. 그냥—"
"아니야. 나 너 십 년 봤는데, 너 이렇게 누구 얘기 오래 한 적 없어. 영화 얘기할 때 빼고." 소영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근데 그 영화도 결국 접었지, 너."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소영은 한참 말이 없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넌 지금 뭐 하고 있는데."
"…뭘 해.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안 만든 거잖아." 소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그 사람 사는 동네 알잖아.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근데 안 물어봤지. 왜? 무서우니까. 찾아갔다가 거절당할까 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하경. 나 처음에 뭐랬어. 여름 시작할 때." 소영이 말했다. "너 또 시작도 전에 접을 준비부터 한다고 했지. 봐, 진짜 그러고 있잖아. 영화 때도 그랬어. 한 번 까이고 아예 카메라를 놨어. 이번에도 똑같아. 그 사람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네가 안 찾는 거야. 접는 게 익숙하니까. 상처받느니 미리 접는 게."
접는 게 익숙하니까. 나는 그 말에 오래 눌러둔 무언가가 툭 터지는 걸 느꼈다. 소영의 말이 맞았다. 나는 늘 그랬다. 재능이 없다는 말 한마디에 삼 년을 접었고, 여름이 끝난다는 이유로 마음을 미리 접었고, 그가 사라지자 찾을 방법이 없다며 또 접으려 했다. 접는 건 쉬웠다. 접으면 아무것도 안 아프니까. 대신 아무것도 안 남으니까.
"나 사실." 소영이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너 이번 여름에 그 마을 간다 했을 때, 좀 걱정했어. 또 도망가는구나 싶어서. 근데 지금 보니까, 너 도망간 데서 처음으로 뭘 좋아하게 됐네. 도망친 자리에서 좋아하는 걸 만나는 거, 그거 아무나 못 해. 그러니까 이번엔 안 놓쳤으면 좋겠어. 나 너 뭐 좋아하는 얼굴, 진짜 오랜만에 봐."
"…나 어떡해, 소영아." 나는 처음으로 그 애 앞에서 울먹였다.
"뭘 어떡해." 소영이 화면 너머에서 웃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찾아가. 이번엔 네가. 접지 말고."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참 화면을 봤다. 까맣게 꺼진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여름 내내 볕에 그을려서, 서울에서 온 그 창백한 애가 아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봤다. 도망쳐 온 얼굴이었는데, 어느새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하는 얼굴이 돼 있었다.
✦ ✦ ✦
전화를 끊고,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있었다. 밤바다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내가 물었다.
"할머니. 노을 극장, 처음에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할머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두운 바다를 한참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느이 할아버지가 시작했지. 젊었을 때. 이 동네엔 극장이 없었어. 읍내까지 나가야 영화를 봤는디,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여. 그래서 느이 할아버지가, 저 공터에 광목 하나 걸고 영사기 하나 갖다놓고 시작한 거여. 마을 사람들 다 모아놓고. 그게 벌써 삼십몇 년 전이네."
나는 할아버지를 잘 몰랐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으니까. 사진으로만 아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도 할머니가 계속 하셨어요?"
"그럼. 그이가 없어졌다고 극장까지 없애불면, 그이가 아주 없어지는 것 같잖여."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스크린에 불 켜질 때마다, 나는 그이가 잠깐 돌아온 것 같었어. 그 사람이 좋아하던 자리에, 그 사람이 걸던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면. 그래서 삼십 년을 못 놨어. 미련이지. 늙은이 미련."
"미련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거 사랑이잖아요."
할머니가 나를 봤다. 어둠 속에서 그 눈이 조금 흔들린 것 같았다. 그러더니 다시 바다를 봤다.
"사랑이든 미련이든, 붙잡는 게 다 그렇게 오래 걸려. 놓는 건 한순간인디."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아직 젊응께, 붙잡는 쪽을 해봐. 놓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하게 돼. 인생이 알아서 놓게 만들어. 근디 붙잡는 건, 지금 아니면 못 해."
나는 그 말에 목이 메었다. 무언가를 남겨두면 아주 없어진 건 아니게 된다던, 며칠 전 내 생각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삼십 년째 그걸 하고 있었다. 스크린 하나로, 먼저 떠난 사람을 붙들고 있었다.
"근디 인자 그것도 끝이네." 할머니가 픽 웃었다. "이장이 밀어불면 밀리는 거지 뭐."
"이장님은 왜 그렇게 냉정하게 밀어붙여요?" 나는 낮에 본 강태섭이 떠올라 물었다. "삼십 년 된 걸 없애면서, 어떻게 저렇게—"
"강태섭이 그놈도." 할머니가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잠깐 멈칫했다. 무슨 말을 하려다 삼킨 것 같았다. "…그놈도 이 극장을 오래 안 놈이여. 젊었을 때, 저기서 영사기 돌리던 게 그놈이었어. 느이 할아버지 옆에서."
"네? 이장님이요?"
"그려." 할머니는 그러고는 딴청을 부렸다. 갑자기 바다 저쪽을 보며, 있지도 않은 배를 세는 것처럼. "옛날 얘기여. 다 지난."
나는 이상했다. 할머니는 강태섭의 젊은 시절을 너무 잘 알았다. 냉정하게 극장을 미는 그 사람이, 사실은 그 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사람이었다는 것도. 미워하려고 봤는데 자꾸 다른 게 보이던, 낮의 그 느낌이 다시 왔다.
"할머니는 그 이장님 사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밤바람 차다. 그만 들어가자."
딴청이었다. 뭔가 있는 딴청. 나는 그 딴청 뒤에 무엇이 있는지 그날은 알지 못했다. 다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이 마을에는, 정을 주고도 미리 접은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었다. 할머니도, 강태섭도, 해성도. 다들 사랑하는 걸 잃을까 봐 먼저 놓아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끝이 어떤 얼굴인지, 나는 지금 할머니의 옆모습에서 보고 있었다. 삼십 년을 붙들고도 결국 놓아야 하는 얼굴.
그날 밤 나는 강태섭이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봤다. 삼십 년 전 이 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젊은이가, 이제는 그 극장을 자기 손으로 밀어야 하는 이장이 됐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 다만 이 극장에 오래 매인 사람이 할머니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 그 정도만 어렴풋이 느꼈다. 냉정하게 미는 손이라고 다 미워서 미는 건 아닐지도 몰랐다. 어떤 사람은 아끼는 걸 지킬 수 없을 때, 차라리 자기 손으로 끝내버리기도 하니까.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주 분명하게,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 ✦ ✦
방으로 들어와, 나는 가방을 열었다.
여름 내내 넣어두기만 했던 카메라가 거기 있었다. 나는 그걸 꺼내 손에 쥐었다. 꺼내지는 않았다. 아직 렌즈 캡도 벗기지 않았다. 그냥 손에 쥐고, 오래 들여다봤다. 찍으면 또 별로일까 봐 삼 년을 겁냈던 물건.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게 무서웠다. 찍지 않아서 아무것도 안 남는 게. 여름이 통째로 사라지는 게. 그 사람이, 아주 없어져버리는 게.
할머니는 스크린 하나로 먼저 떠난 사람을 삼십 년 붙들었다. 나라고 못 할 게 뭔가. 나에게도 스크린이 있었다. 아직 안 없어진 스크린이. 그리고 그 스크린을 지킬 방법이, 어쩌면 하나 있었다.
마지막 상영회. 없어지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우리 손으로.
생각하자마자 심장이 뛰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무언가를 정말 하고 싶어서. 삼 년 만이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제 상관없었다. 잘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냥 없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불을 켜는 것. 할머니가 삼십 년 해온 그 일을 나도 딱 한 번 해보는 것. 그거면 됐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는 걸, 나는 그 새벽에야 알았다. 나는 삼 년 동안 잘하지 못할까 봐, 하고 싶은 것까지 접고 살았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이장은 반대할 거고, 공사는 코앞이고, 해성은 사라졌고, 나는 이 마을에 여름 두 달 있은 외지인일 뿐이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딱 하나, 나는 필름을 걸 줄 알았다. 여름 내내 배운 게 그거였다. 손이 먼저 배운다고, 그 사람이 그랬다. 어쩌면 내 손은 이미 이 여름을 지킬 준비가 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겁내는 동안에도.
나는 카메라를 쥔 채로 밤새 그 생각을 굴렸다. 그리고 날이 밝기도 전에, 아직 어둑한 새벽에, 나는 집을 나섰다. 그를 찾으러. 아니, 그를 찾기 전에 먼저, 그 공터로. 마지막 상영회를 시작할 자리로.
✦ ✦ ✦
언덕을 내려가는 새벽길은 서늘했다. 여름이 기울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밤에까지 후텁지근하더니, 이제는 새벽 공기에 서늘한 기운이 섞였다. 여름의 끝이 공기에 먼저 왔다. 나는 그 서늘함에 팔을 문지르며 걸었다. 무슨 말을 할지도 정하지 못했고, 그가 거기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고, 마지막 상영회를 어떻게 열지도 몰랐다.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발은 멈추지 않았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결과를 모르는 일을 향해 걷고 있었다. 찢어질 걸 알고도 그물을 던지는 것. 그 사람 아버지가 그랬다는 그 말을, 나는 이제야 몸으로 하고 있었다.
공터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아직 검푸른 새벽이었다.

그런데 스크린 쪽에 무언가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무 기둥에 걸린 흰 광목 스크린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느슨하게 풀려 늘어져 있던 스크린을, 다시 팽팽하게. 등을 보이고 선 실루엣이었다. 얼굴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 새벽에, 아무도 없어야 할 공터에서, 누가 스크린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없애려는 손이 아니었다. 늘어진 걸 팽팽하게 당기는 손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는 손이었다. 나는 그 실루엣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고, 알 것 같아서 더 다가가지 못했다. 아니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맞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동시에 발을 붙들었다.
그런데 그 실루엣의 목에, 낡은 필름 카메라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새벽 바람에 스크린이 한 번 크게 부풀었다가, 팽팽하게 펴졌다. 그 부풂이 꼭, 오래 참았던 숨을 이제야 내쉬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사람도, 이 여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