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극장 — 제3화. 영화 한 편의 시간

세 번째 토요일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산책이라는 말로 나를 속이지 않았다.
해가 기울면 나는 그냥 방파제로 내려갔다. 산책이라는 알리바이도, 마당에서 본 스크린 때문이라는 변명도 없이. 그냥 거기 갈 사람이라서 갔다. 사람은 세 번쯤 같은 일을 반복하면 그걸 습관이라 부르고, 습관이 되면 이유를 잊는다. 나는 이유를 잊는 편을 택했다. 이유를 또렷이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목에 카메라를 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봐.
공터에 도착하니 해성은 벌써 영사기 앞에 있었다. 나를 보고 고개만 까딱했다. 그게 우리의 인사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빈 릴을 집어 들었다. 세 번째라 이제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스프로킷 구멍을 톱니에 맞추고, 게이트를 지나서, 아래로. 두 번 틀리던 게 이제 한 번에 맞았다. 필름이 롤러를 지나 아래 릴로 미끄러질 때, 해성이 옆에서 짧게 말했다.
"잘하네요. 이제 나보다 낫겠어."
"거짓말."
"진짜예요. 손이 기억하는 거예요.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배워요."
손이 먼저 배운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적어뒀다. 좋은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 사람은 말수가 적은데, 가끔 이렇게 오래 남는 문장을 툭 흘렸다. 아껴 찍는 사람이 말도 아껴 하는데, 아껴서 그런지 그 몇 마디가 다 정확했다.
해성이 카메라를 들어 노을을 한 컷 찍었다. 찰칵. 딱 한 번. 그러고는 또 내렸다. 나는 이제 그 절제가 무슨 뜻인지 안다. 저 필름은 서른여섯 컷짜리고, 다 채우는 날 저 사람은 배를 탄다. 그러니 한 컷을 찍는 건 여름을 하루치 앞당기는 일이다. 나는 카메라 위 작은 창을 흘긋 봤다. 숫자가 처음보다 올라가 있었다. 이제 절반쯤 감긴 것 같았다. 여름의 절반이 저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이상하게 그 숫자가 더 안 올라갔으면 싶었다. 그건 그 사람더러 사진을 찍지 말라는 뜻이었고, 사진을 찍지 말라는 건 여기 더 있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내 생각의 끝을 못 본 척했다.
세 번째 토요일이 되면서 달라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마을도 나를 조금씩 알아봤다. 박 씨 사진관 앞을 지나면 노인이 유리문 안에서 고개를 까딱했고, 평상에서 국수를 파는 단골들은 나를 '서울서 온 손녀'로 불렀다. 나는 그 호칭이 싫지 않았다. 서울에서 나는 늘 '재능 없는 애'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는 애'였는데, 여기서는 그냥 누군가의 손녀였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름. 나는 그 가벼움이 좋아서, 하루하루 서울로 돌아갈 날을 미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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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이 시작됐다.
해가 완전히 지고, 영사기에 불이 들어오고, 흰 스크린 위로 흑백의 빛이 쏟아졌다. 관객들이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대부분 일흔이 넘은 얼굴들이었다. 파도 소리가 낮게 깔리고,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그 위에 얹혔다. 나는 해성 옆, 영사기 뒤편 자리에 앉았다. 우리 자리. 언제부터 그게 우리 자리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한 편은 대략 사십 분이었다. 낡은 필름이라 중간에 화면이 튀고 소리가 긁혔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흠집들이 이 극장의 일부 같았다. 완벽한 화면은 텔레비전에도 있다. 여기 있는 건 흠집투성이의,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 소리가 섞이는 화면이었다. 나는 이런 화면을 좋아했다. 좋아한다. 이제 과거형으로 말하는 연습은 조금 덜 하게 됐다.
상영 중에는 목소리를 낮춰야 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늘 소곤거림이었다. 소곤거리면 사람은 이상하게 솔직해진다. 큰 소리로는 못 할 말도 작은 소리로는 나온다.
"저 영화, 예전에 봤어요." 해성이 스크린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여름마다 한 번은 꼭 틀어요."
"질리지 않아요? 매년 같은 거."
"할머니는 화면을 보는 게 아니라 여름을 보는 것 같아요. 그 영화가 나오면, 아, 올여름도 왔구나, 하는."
나는 그 말에 스크린을 다시 봤다. 여름을 보는 화면. 그렇게 생각하니 흑백의 낡은 영화가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나는 무심코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로 네모를 만들었다. 스크린을 그 안에 담았다. 오래된 버릇이었다. 좋은 걸 보면 프레임부터 잡는.
"그거 뭐예요?"
해성이 물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렸다.
"아, 아니에요. 그냥 버릇."
"영화 하는 사람들이 그런다던데. 손으로 프레임 잡는 거."
들켰다.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결국 흘리고 말았다.
"…예전에, 영화 하려고 했어요."
말해놓고 후회했다. 늘 이런 식이다. 아무한테도 안 하는 얘기가 어두운 데서,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파도 소리에 섞여서 툭 나와버린다. 나는 얼른 덧붙였다.
"지금은 아니고요. 그냥, 옛날 얘기예요."
해성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게 고마웠다. 소영이라면 여기서 열 개쯤 질문을 던졌을 거고, 나는 그 질문에 하나도 대답 못 하고 도망쳤을 거다. 그런데 해성은 스크린을 보며 잠깐 가만있다가, 딱 한마디만 했다.
"그래서 릴을 그렇게 잘 걸었구나."
나는 그 문장에 목이 조금 메었다.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 사람은 나를 추궁하지 않았고,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아까 필름을 잘 건 것과, 방금 흘린 옛날 얘기를 조용히 하나로 이어줬을 뿐이다.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나는 삼 년 동안 나를 '재능 없는 사람'으로만 접어뒀는데, 이 사람은 나를 '릴을 잘 거는 사람'으로 펴줬다. 접는 건 쉽고 펴는 건 어렵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걸 한 문장으로 했다.
"지난주에도 그랬어요." 해성이 말을 이었다. "필름 걸 때, 손끝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하더라고요. 아무나 그렇게 안 해요. 대충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지난주. 그러니까 이 사람은 지난주 내 손끝까지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세는 것들—그의 필름, 그의 절제, 화요일 아닌 토요일—을 그가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람도 무언가를 세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로 다른 걸 세는 두 사람이 같은 영사기 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게 조금 웃겼고, 조금 벅찼다.
스크린 위에서 흑백의 두 사람이 헤어지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헤어지는 장면이라는 건 자막 없이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등을 돌리는 각도, 남은 사람의 어깨가 내려가는 모양. 영화는 그런 걸로 말한다. 대사보다 각도로. 나는 예전에 그런 걸 배우는 게 좋았다.
"어떤 영화 만들고 싶었어요?"
해성이 물었다. 캐묻지 않겠다던 사람이 딱 한 걸음만 들어왔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어두워서 용기를 냈다.
"큰 거 아니고요. 그냥…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영화. 사람들이 밥 먹고, 빨래하고, 버스 기다리고. 그런 거요. 근데 그 안에 뭔가 있는 거. 말 안 해도 아는 거."
말해놓고 또 부끄러웠다. 그런 영화는 아무도 안 본다고, 재미가 없다고, 봄에 누군가 그랬으니까. 그런데 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기 있네요. 그런 거."
그가 스크린이 아니라 관객석을 가리켰다. 평상에 앉아 흑백 영화를 보는 노인들. 누구는 졸고, 누구는 부채질을 하고, 누구는 옆 사람에게 옛날 얘기를 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그 안에 여름이 다 들어 있었다.
"저는 저런 걸 찍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어요." 해성이 말했다. "대단한 거 말고. 사라질 것들. 어차피 다 사라지니까, 사라지기 전에 한 장이라도."
사라질 것들. 나는 그 말에 카메라 위의 숫자를 다시 떠올렸다. 이 사람은 사라질 걸 미리 아는 사람이라 찍는 거였다. 나는 사라질까 봐 무서워서 아예 안 찍는 사람이고. 같은 두려움을 두고 한 사람은 셔터를 누르고, 한 사람은 렌즈 캡을 닫는다. 나는 어느 쪽이 더 용감한 건지 오래 생각했다.
✦ ✦ ✦
"둘이 뭘 그리 소곤거려."
수박 접시가 불쑥 우리 사이로 들어왔다. 금자 할머니였다. 언제 왔는지, 커다란 접시에 수박을 썰어 들고 평상 쪽에서 다가왔다. 얼음물에 담갔다 꺼낸 듯 겉이 촉촉했다.
"영화 보다 말고 입만 살아서. 자, 먹어. 더운데."
할머니는 우리를 평상 쪽으로 밀었다. 영사기는 알아서 돌아가니 잠깐 비워도 된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평상 한쪽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가 그 사이에 수박 접시를 놓았다. 미지근한 여름밤의 수박은 이가 시리지 않아서, 오래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씨를 뱉으며 바다를 봤다. 검은 바다 위로 고깃배 불빛이 몇 개 떠 있었다.
"해성이 저놈이." 할머니가 수박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말은 없어도 손은 야무져. 애비 닮았지. 애비도 손재주는 기가 막혔어."
"할머니." 해성이 낮게 말렸다.
"왜. 틀린 말 했냐." 할머니는 딴청을 부리며 나를 봤다. "얘, 너는 저놈한테 정 주지 마라. 손해여."
"할머니."
"여름 끝나면 배 타. 반년은 못 봐. 애비처럼 바다로 나가불면, 편지도 뜸하고 전화도 뜸하고. 기다리는 사람만 바보 되는 겨."
할머니는 그 말을 농담처럼 툭 던지고는, 수박 씨를 멀리 뱉었다. 나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뭔가를 아는 얼굴이었다. 정을 줬다가 반년씩 바다에 뺏겨본 사람의 얼굴. 나는 그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곧 깨달았다. 거울에서였다. 정들기 전에 미리 접는 사람의 얼굴. 할머니와 해성과 나는, 어쩌면 같은 얼굴을 세 개 가지고 있었다.
"정 안 줘요." 내가 말했다. "저도 여름만 여기 있는걸요."
"그려. 잘 생각했다." 할머니가 웃었다. 웃는데 눈이 안 웃었다. "다들 그러다 정 줘서 탈이지."
"할머니는요." 나는 물었다. "할머니도 그렇게 정 줘서 탈 난 적 있어요?"
할머니는 수박을 우물거리다 잠깐 멈췄다. 그리고 딴 데를 봤다. 스크린도 바다도 아닌, 저 방파제 끝 어드메를. 오래 산 사람만이 가지는, 특정한 자리를 오래 보는 눈이었다.
"…있지. 왜 없어." 할머니는 그러고는 금방 화제를 돌렸다. "너는 서울서 뭐 하는 애여. 공부하냐."
"휴학했어요."
"휴학. 그려. 좀 쉬다 가. 여기 공기가 좋어. 밤바다 보면서 아무 생각 안 하는 거, 그거 서울선 돈 주고도 못 햐."
아무 생각 안 하기. 내가 이 여름에 하려던 딱 그거였다. 그런데 정작 나는 여기 와서 매 순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필름을, 누군가의 손끝을, 여름의 끝을. 아무 생각 안 하러 와서 제일 많이 생각하는 여름이 될 것 같았다.
해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박만 먹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아무 말 없음이, 이상하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그의 옆얼굴을 봤다. 노을은 이미 졌고, 스크린의 흰빛만 그의 얼굴에 어른거렸다. 그 얼굴은 여름 끝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는데도 지금 여기 앉아 수박을 먹는 사람의.
멀리서 매미가 울었다. 여름밤인데도 매미가 울었다. 낮의 매미와는 다른, 조금 지친 울음이었다. 여름이 한창일 때 우는 매미는 시끄러운데, 여름이 기울 때 우는 매미는 어쩐지 애처롭다. 같은 울음인데 계절이 다르면 다르게 들린다. 사람 말도 그런 것 같았다. 정 주지 마라, 는 할머니의 말도, 계절이 다르면 다르게 들렸을 거다.
✦ ✦ ✦
상영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필름이 마지막 릴로 다 감기고, 스크린 위 흑백의 빛이 탁, 하고 꺼졌다. 관객들이 하나둘 평상을 접고 일어났다. 할머니는 아는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러 갔다. 공터에 어둠이 돌아왔다. 스크린은 다시 텅 비었고, 그 위로 진짜 밤하늘이 내려앉았다. 별이 많았다. 도시에서는 본 적 없는 개수였다.
할머니가 어르신들과 인사하는 소리가 멀어졌다. 공터에는 이제 우리 둘과, 아직 온기가 남은 영사기와, 바람에 조금씩 우는 스크린만 남았다. 낮 동안 달궈진 땅에서 풀 냄새가 올라왔다. 바다는 어둠 속에서 소리로만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이 좋았다. 상영이 끝나고 관객이 다 돌아간 뒤, 극장이 극장이기를 잠깐 멈추고 그냥 바닷가 공터로 돌아가는 이 시간. 하루 중 가장 짧고, 가장 우리 것 같은 시간.
"정리 안 해요?" 내가 물었다.
"조금 있다가요." 해성이 스크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시간이 아까워서."
아까운 건 저 사람의 필름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시간도, 이 여름도, 다 아껴서 조금씩 쓰는 사람. 나는 아끼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아끼게 된다는 걸 그 여름에 배웠다. 한 컷을, 한 마디를, 한 밤을.
해성이 영사기를 정리하다 말고,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그가 또 노을을 찍으려나 했는데, 노을은 이미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잠깐 가만있었다. 그러더니 나직이 말했다.
"이 여름을, 딱 한 통에 담기로 했잖아요."
"…네."
"근데 요즘, 자꾸 한 사람만 찍고 싶어져서. 큰일이에요."
그가 카메라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렌즈가 나를 향했다. 뷰파인더 너머로 그의 한쪽 눈이 사라지고, 남은 눈이 나를 봤다. 아니, 나를 담았다. 서른여섯 칸 중 한 칸에, 여름의 하루치를 앞당기면서까지, 나를.
셔터는 아직 눌리지 않았다. 그의 검지가 셔터 위에 얹힌 채로, 누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그 망설임이 좋았다. 아끼는 사람의 망설임. 이 한 컷을 정말 나한테 써도 되나, 하는 그 짧은 정지.
나는 도망쳐야 했다. 늘 그랬듯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거나, 아니에요 하고 물러서거나, 화제를 돌리거나. 그런데 그날 밤은, 별이 너무 많았고 파도가 너무 가까웠고, 나는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그 렌즈 앞에 서 있었다.
찍어요.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그 한 컷이 여름을 하루 앞당긴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