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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청춘 로맨스

노을 극장 — 제2화. 연락처는 묻지 않기로 해요

2026.08.09 발행 · 전 8
여름밤 스크린 아래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실루엣

엿새 동안, 나는 그 남자가 왜 한 컷만 찍었는지를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생각났다. 그 좋은 노을 앞에서, 붉어지는 스크린 앞에서, 그는 딱 한 번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를 내렸다. 그리고 렌즈 위 작은 창에 적혀 있던 낮은 숫자. 여름이 중턱인데 얼마 감기지 않은 필름. 나는 그 남자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그 한 컷을 이상하게 크게 만들었다. 왜 안 찍을까. 뭘 저렇게 아낄까. 아끼는 사람은 대개 잃을 걸 미리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그 이유까지는 아직 몰랐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한 여름이었는데, 나는 자꾸 누군가의 필름을 세고 있었다. 세는 것도 하는 것에 들어가나. 그렇다면 나는 규칙을 어기고 있는 셈이었다.

마을 생활은 단순했다. 아침 늦게 일어나 할머니가 차려둔 밥을 먹고, 평상에 누워 매미 소리를 듣고, 해가 기울면 방파제 쪽으로 산책을 갔다. 산책의 경로에는 규칙이 있었다. 언덕을 내려가 어귀의 박 씨 사진관을 지나고—꼭 지나기만 했다, 들어가지는 않고—방파제 난간을 따라 공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

사진관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걸음이 느려졌다. 유리문 안쪽, 카운터 뒤 선반에 꽂힌 필름 봉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뭘 그리 찍는지. 노인의 말이 자꾸 귀에 남았다. 나는 그 총각이 하루에 몇 컷을 찍는지, 무엇을 찍는지 궁금했다. 궁금해하는 나 자신도 궁금했다. 남이 찍는 건 이렇게 궁금하면서, 나는 왜 한 컷도 못 찍을까. 보는 눈은 좋은데 만드는 재능은 없는 것 같아. 봄에 들은 그 문장은 여기까지 따라와서, 매미 소리 사이사이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좋은 문장은 잊히는데 나쁜 문장은 안 잊힌다. 이것도 세상의 불공평한 규칙 중 하나다. 공터에는 상영이 없는 날에도 광목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낮에는 그냥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다가, 바람이 불면 문득 살아나서 배의 돛처럼 부풀었다. 나는 그 부풂을 보려고 산책을 갔다. 순전히 그것 때문이라고, 이번에도 우겼다.

가방에는 여전히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걸 방에 두고 나올 수도 있었는데 매일 들고 다녔다. 찍지도 않을 거면서. 소영이 이걸 알면 뭐라고 할지 뻔했다. 그건 미련이지 습관이 아니야, 유하경. 소영은 늘 내가 나 자신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줬다. 그래서 나는 소영에게 이 마을 얘기를 반만 했다. 절반은 숨겼다. 숨긴 절반은 대부분 목에 카메라를 건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눈치가 빨랐다.

엿새 중 어느 낮, 나는 평상에 누워 매미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할머니가 옆에서 마늘을 까며 지나가듯 물었다.

"요새 저녁마다 어디를 그리 댕겨."

"산책이요."

"산책이 방파제 쪽으로만 나던가."

나는 대답을 못 했다. 할머니는 마늘 껍질을 후 불어 날리며 딴 데를 봤다. 추궁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다 안다는 얼굴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해주는 거였다. 이 마을 사람들의 다정함은 늘 그런 식이었다. 정면으로 오지 않고, 옆으로 살짝 비켜서 온다.

"해성이 그놈, 말은 없어도 속은 깊어." 할머니가 마늘 하나를 소쿠리에 던지며 말했다. "지 애비가 배 타는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정을 붙였다 뗐다 하는 걸 너무 일찍 배웠어. 그래서 뭐든 미리 접어. 정들기 전에 접어불어."

"…왜 저한테 그런 얘길 해요."

"그냥. 니가 저녁마다 방파제로 산책을 나가서."

할머니는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평상에 누운 채로 오래 하늘을 봤다. 미리 접는 사람. 정들기 전에 접어버리는 사람. 나는 그게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매미 소리에 대꾸하듯 눈을 감았다.

✦ ✦ ✦

엿새째 되는 날 저녁, 두 번째 상영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내려갔다. 그렇게 나에게 말해두는 편이 편했다. 공터에는 벌써 사람이 몇 있었다.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그 남자는 어제처럼—이라고 하기엔 엿새 전이지만—스크린 아래에서 뭔가를 손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영사기 쪽이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다가갈까 말까를 정하지 못한 채로 서 있었다. 다가가는 데 필요한 문장이 준비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는 너무 갑작스럽고, 저 기억하세요는 너무 기대고, 그냥 웃는 건 너무 없어 보였다.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릴이나 잡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남자 쪽으로 밀었다.

"우리 손녀여. 서울서 왔어. 여름 내내 아무것도 안 한다고 큰소리치는디, 손 하나가 아쉬운 판에 잘됐지. 해성아, 얘 좀 부려먹어."

해성. 나는 그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차해성. 할머니가 마저 알려줬다. 이름을 알고 나니 그동안 '그 남자'라고 불러온 사람이 갑자기 부피가 생겼다. 이름은 그런 거다. 부르는 순간 상대가 세상에서 조금 더 무거워진다.

"유하경이에요."

내가 말했다. 해성은 필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릴 잡을 줄 알아요?"

"몰라요. 근데 배울 수 있어요."

이건 진심이었다. 다른 건 다 못 배워도 이건 배우고 싶었다. 해성은 잠깐 나를 보더니, 빈 릴을 내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필름을 거는 순서를 손으로만 보여줬다. 여기 스프로킷 구멍을 톱니에 맞추고, 게이트를 지나서, 아래로. 설명은 여전히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따라 필름을 걸었다. 두 번 틀렸고 세 번째에 맞았다. 필름이 롤러를 지나 아래 릴로 이어졌을 때, 나는 이상하게 벅찼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필름 하나 건 것뿐인데.

"잘하네요."

해성이 말했다. 표정은 없었지만 빈말 같지는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어제의—엿새 전의—그 매직 아워가 다시 왔다. 하늘이 주황에서 남색으로 갈리고, 스크린이 분홍으로 물들었다. 해성은 카메라를 들어 그걸 찍었다. 이번에는 나를 향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노을과 스크린이었다. 찰칵. 묵직한 셔터 소리. 나는 그 소리가 좋아서 저 카메라를 산 걸까, 아니면 저 사람이 원래 저 소리를 좋아하는 걸까, 쓸데없는 걸 궁금해했다.

"매일 찍어요? 노을."

"여름 동안은요."

"근데 왜 한 장만 찍어요?" 나는 엿새를 참았던 질문을 결국 꺼냈다. "그저께도 딱 한 컷 찍고 마시던데. 아까운데."

해성은 잠깐 손을 멈췄다. 그러더니 목에 건 카메라를 들어, 렌즈 위 작은 창을 나에게 보여줬다. 필름 카운터의 숫자가 보였다. 아직 한 자릿수였다.

"한 통에 서른여섯 컷이거든요. 이 카메라는."

"서른여섯 컷."

"이 여름을, 딱 한 통에 담으려고요. 서른여섯 장. 그거 다 채우면—" 그는 카메라를 내렸다. "그때 배 타요. 마지막 컷 찍는 날."

그러니까 그는 여름을 한 통의 필름으로 재고 있었다. 하루에 몇 장씩 마구 찍으면 필름은 금방 끝나고, 필름이 끝나면 여름도 끝난다. 그래서 아꼈다. 한 컷 한 컷을. 떠나는 날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사람처럼, 아니면 떠나는 날을 정확히 자기 손으로 정해두려는 사람처럼. 나는 그 서른여섯이라는 숫자가, 파도 소리보다도 또렷하게 여름의 끝을 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카메라 필름 카운터의 낮은 숫자

"저 해양대 다녀요. 여름 끝나면 실습 항해 나가요. 반년쯤."

배. 반년. 나는 그 두 단어를 받아 들었다. 그러니까 저 필름 한 통이 다 감기면, 이 사람은 여기서 사라진다. 나는 왜인지 조금 서운했다. 서운할 자격이 없는데 서운한 건, 세상에서 제일 민망한 감정이다.

"그래서 여름만 여기 있는 거예요?"

"방학 동안만요. 외가가 여기라. 할머니 극장 일 돕고, 노을 찍고. 그러다 배 타고."

그는 그렇게 자기 여름을 요약했다. 요약이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쓸쓸했다. 시작과 끝이 이미 정해진 여름. 나처럼 아무 데도 안 쓰고 버리는 여름이 아니라, 정확히 오십 며칠짜리로 재단된 여름. 나는 그 재단선이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극장은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라던데."

내가 말하자 해성의 손이 잠깐 멈췄다.

"할머니가 말했어요?"

"공사 때문에 공터가 없어진다고."

"이장님이 벼르셔서요. 태풍철 되기 전에 방파제 보강해야 한다고. 저기 공터가 딱 그 자리라." 해성은 스크린 쪽을 봤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근데 할머니가 삼십 년 한 걸 올여름에 접는 거라, 마음이 좀."

그는 문장을 끝맺지 않았다. 마음이 좀. 그 뒤에 올 말을 삼키는 게, 어쩐지 익숙한 동작으로 보였다. 나는 남의 삼킨 말을 알아보는 데 재능이 있었다. 만드는 재능은 없어도 그런 재능은 있었다.

해가 완전히 졌다. 영사기에 불이 들어오고, 필름이 지직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평상에 앉아 흑백 화면을 올려다봤다. 파도 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해성 옆, 영사기 뒤편에 앉아 그 화면을 봤다. 관객석이 아니라 영사기 쪽에서 보는 스크린은 뒤집혀 있었다. 글자가 거꾸로였다. 그런데 거꾸로 된 화면이 이상하게 더 좋았다. 완성된 걸 보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걸 보는 자리 같아서.

해성이 아이스박스에서 사이다 캔 두 개를 꺼내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미지근했다.

"얼음이 다 녹아서."

"미지근한 거 좋아해요."

"이상하네요."

"이상한 거 처음 듣는 것도 아니라."

해성이 표정 없이 캔을 땄다. 치익, 하는 소리가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에 섞였다. 우리는 거꾸로 뒤집힌 화면을 보며 미지근한 사이다를 마셨다. 관객석에서는 가끔 할머니들이 아는 배우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저 사람 저거 옛날에 잘생겼었는디. 지금은 죽었어. 아이고. 그 웃음과 탄식이 파도 소리에 얹혔다. 나는 이 자리가, 뒤집힌 화면과 미지근한 사이다와 남의 웃음소리가 섞인 이 영사기 뒤가, 여름 내내 내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잠깐만. 그 생각을 오래 하면 뭔가를 바라게 되고, 뭔가를 바라면 여름의 끝이 아파지니까.

상영이 끝나갈 무렵, 필름이 마지막 릴로 다 감겼다. 해성이 영사기 불을 껐다. 스크린이 다시 텅 비고, 그 위로 진짜 밤하늘이 돌아왔다.

"저기요." 해성이 필름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제안이 하나 있는데."

"제안이요?"

"여름 동안, 상영 있는 날엔 릴 잡아줄 사람 필요하거든요. 손이 모자라서. 대신—"

그는 거기서 잠깐 멈췄다. 다음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대신, 연락처는 안 물어보기로 해요. 우리."

나는 그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해성은 필름 케이스를 닫으며, 나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여름 끝나면 반년을 떠나 있고, 하경 씨도 여름만 여기 있는 거잖아요. 어차피 각자 갈 데가 정해진 사람들이니까. 연락처 주고받고, 문자하고, 그러다 흐지부지 미안해지고. 그런 거 없이. 그냥 이 여름 동안 여기서 릴 잡는 사이. 딱 그만큼만."

딱 그만큼만. 나는 그 재단선을 봤다. 이 사람은 자기 여름만 재단하는 게 아니라, 나까지 그 선 안에 넣어서 미리 잘라두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먼저 끝을 정해두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안다. 거울로 매일 본다.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좋다고 했다. 어차피 나도 뭔가를 시작할 용기 같은 건 없었으니까. 시작이 없으면 끝도 안 아프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아는 규칙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규칙에 서명했다.

"그럼 다음 상영에 봐요."

해성은 영사기를 챙겨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박 씨 사진관 쪽이었다. 필름을 맡기러 가는 거겠지. 여름을 찍어서, 어두운 가게에 차곡차곡 쌓아두러.

✦ ✦ ✦

집에 오니 소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살아 있네." 받자마자 소영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뒤로 자취방의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깔렸다. "목소리 들어보자 했지. 뭐야, 너 지금 밖이야? 파도 소리 나는데."

"방금 들어왔어. 산책만 좀 했어."

"산책. 유하경이 자발적으로 산책을. 거기 뭐 있어?"

"아무것도 없어. 바다랑 매미랑 할머니."

나는 릴을 잡은 것도,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연락처를 묻지 않기로 한 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소영은 정확한 문장으로 그걸 해부할 테고, 나는 해부당한 감정을 다시 꿰맬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소영은 이런 걸 냄새 맡는 데 선수였다.

"너 뭔가 숨기지."

"안 숨겨."

"숨겨. 목소리가 반 톤 높아. 유하경 너, 설마 거기서 뭐 시작한 거 아니지?"

"시작 안 했어."

"잘했어. 아니 잘한 게 아니라—" 소영은 한숨을 쉬었다. 전화기 너머로도 그 한숨이 또렷했다. "너 또 그거지. 시작도 하기 전에 접을 준비부터 하는 거. 영화 때도 그랬잖아. 한 번 까이고 아예 카메라를 놨어. 사람 마음도 그렇게 미리 접어두면, 나중에 진짜 좋은 거 와도 못 잡아, 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영의 말이 오늘 밤에 있었던 어떤 장면과 너무 정확히 겹쳐서였다. 연락처는 안 물어보기로 해요. 딱 그만큼만. 좋아요. 나는 오늘 접을 준비부터 한 사람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봤다. 하나는 그 사람이었고, 하나는 나였다.

"끊자. 졸려."

"야, 유하경. 딱 하나만 물을게." 소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너 지금 안 아프려고 미리 안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안 좋아하는 거야? 둘은 완전 다른 거야."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못 한 게 대답이었다. 소영은 그걸 알아챘는지, 더 캐묻지 않고 한숨만 길게 쉬었다. 잘 자, 라는 말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나는 어두운 방에 앉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오늘 그 노을을, 분홍으로 물든 스크린을, 릴을 걸던 내 손을 떠올렸다. 저건 찍었어야 했는데. 다시는 없을 화면이었는데. 나는 렌즈 캡에 손을 얹었다. 손끝이 캡의 홈에 닿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딸깍, 하고 열릴 거였다.

나는 캡을 열지 못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카메라를 도로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지퍼 소리가 방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마음이 또 손을 이겼다. 마음은 늘 손보다 힘이 세다.

지퍼를 닫는 가방 속 카메라

오늘을 빼면, 다음 상영까지 엿새. 그리고 그 사람의 필름은 오늘 몇 컷이 늘었을까. 서른여섯 중에서, 여름은 이제 몇 장이나 남았을까.

본 소설은 창작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상호·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삽화는 AI로 생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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