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탁소 — 제5화. 멈춘 세탁기

통지서를 본 사람은 그 주 내내 이상한 짐을 지고 산다.
나는 그 일요일 새벽 이후로 사흘째, 유리문에 붙어 있던 글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임대차 계약 해지 예고. 기한. 원상복구. 임대인 강복만. 교정을 보다가도 그 단어들이 원고 위로 올라왔고, 보리차를 따르다가도 컵 안에 떠 있었다. 남의 문서를 이렇게 오래 기억하는 건 직업병 축에도 못 드는 일이었다. 문서가 아니라 문서가 붙어 있던 유리문을, 그 유리문 너머의 어두운 오븐을, 오븐 앞에서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이름 없는 가게를 기억하는 거니까.
문제는 이 짐을 어디에 내려놓느냐였다. 그 사람은 내가 통지서를 봤다는 걸 모른다. 내가 일요일 새벽에 불 꺼진 가게 앞까지 갔었다는 것도. 말하려면 그것부터 자백해야 했고, 자백하려면 그 새벽의 산책이 산책이 아니었다는 것까지 인정해야 했다. 문장은 자꾸 길어지고, 나는 화요일까지 그 문장을 다듬기로 했다. 다듬는 김에 세제도 미리 챙겨뒀다. 정산할 게 두 개라던 말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세제 한 컵과 교정비. 화요일의 우리에게는 그런 귀여운 채무 관계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그 사흘 동안 나는 화요일의 세탁소를 몇 번이나 미리 살았다. 세제를 건네고, 농담을 하고, 적당한 순간에 통지서 얘기를 꺼내고, 그 사람이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사정을 설명해 주고, 우리는 같이 방법을 찾아보고. 머릿속의 화요일은 늘 그런 식으로 순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화요일이 왔고, 나는 한 마디도 못 했다.
그 사람은 평소처럼 왔다. 목례를 했고, 앞치마를 빨았고, 다만 말수가 평소의 절반이었다. 나는 준비한 문장을 목까지 올렸다가 세탁기 소리에 묻히게 두기를 사십 분 내내 반복했다. 통지서의 티읕도 못 꺼냈다. 남의 제일 아픈 종이를 먼저 꺼내는 데 필요한 용기가, 그 새벽의 나에게는 없었다. 다음 주에는 말하자. 미루는 것도 재능이라면 나는 그 분야의 경력자였다.
다음 화요일이 오기 전에, 목요일이 먼저 왔다.
✦ ✦ ✦
금례 할머니네 반찬통을 돌려드리려고 낮에 골목에 나간 참이었다. 화요일까지 기다리려던 통이었는데, 콩자반이 자꾸 눈에 밟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콩자반이 아니라 그 골목이 눈에 밟혔지만, 나는 그 교정을 미뤄뒀다.
반찬가게 앞에서 나는 소리를 먼저 들었다.
"그러니까 말을 해보라는 거 아닌가!"
골목 안쪽이었다. 문구점 모퉁이 쪽. 나는 반찬통을 안은 채로 걸음을 옮겼고, 모퉁이 담벼락 앞에서 멈췄다. 반쯤 몸을 숨긴 건 의도가 아니었다. 몸이 먼저 그렇게 했다.
빵집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가 채 털리지 않은 손을 늘어뜨리고.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회색 점퍼, 한 손에 대나무 빗자루. 소설보다 더하다던 그 빗자루였다. 통지서 맨 아래의 세 글자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서 있는 것이라고, 나는 바로 알았다.
이상한 것은, 노인의 발치가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빵집 앞 골목만 이미 쓸려 있었다. 화를 내러 온 사람이 화를 내기 전에 그 집 앞부터 쓸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순서가 이상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순서가 이 노인의 전부였다.
"멀쩡한 호텔을 나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동네에 말이 도는데."
"…"
"위생 사고를 쳤다며. 손님들 앓아눕게 하고 조용히 나왔다며. 먹는 장사 시킬 자리에 그런 소문을 어떻게 앉혀."
"…"
"이봐, 총각. 나는 소문 갖고 사람 자르는 취미 없어. 그런데 자네는 지금 소문보다 못한 걸 하고 있어.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소문이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빗자루 끝이 바닥을 쳤다. 탁. 마른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반박하는 얼굴도, 억울한 얼굴도 아니었다. 세탁기 앞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의 그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듣는 사람. 아니면 무언가를 견디는 사람.
"내가 자네 빵을 먹어봤어."
노인이 갑자기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새벽에 몰래 굽는 거, 냄새로 다 알았어. 한번은 우리 집사람 산소 갔다 새벽에 들어오는데 이 골목이 훈훈하더구먼. 그런 빵 굽는 사람이 사고를 쳤다는 게 나는, 도무지."
노인은 그 문장을 끝맺지 않았다. 끝맺지 않은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담벼락 뒤의 나까지 알 수 있었다. 믿고 싶다는 말이었다. 아니라고 말해주면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손 내민 문장 앞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기한까지 답을 주게. 아니면 종이대로 하는 거고."
노인은 빗자루를 어깨에 걸치고 돌아섰다. 그리고 골목을 나가면서, 정말로 골목을 쓸면서 갔다. 화가 난 걸음으로도 쓰레기를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담벼락 뒤에서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다 가게로 들어갔고, 유리문이 닫혔고, 나는 모퉁이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지금 가서 무슨 말을 하지. 방금 다 봤어요? 괜찮아요? 소문이 뭐예요? 전부 틀린 문장이었다. 나는 반찬통을 안고 서서, 끼어들 자격과 끼어들 용기를 분리해서 검토했고, 둘 다 재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온 길을 돌아 나갔다. 반찬가게에 통만 놓고, 할머니가 뭐라 묻기 전에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왔다.
우산을 못 빌려주던 밤이 생각났다. 사십 분 내내 고민만 하다 끝난 밤. 사람은 사 년이 지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못나지는구나. 그날 오후 내내 나는 그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는 검색창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호텔, 디저트, 위생 사고. 세 단어를 쳤다가 지웠다. 두 번 쳤다가 두 번 지웠다. 검색하면 뭔가 나올 것이다. 기사든, 게시판의 소문이든, 소문의 소문이든. 그런데 그건 그 사람의 문장을 그 사람 없이 읽는 일이었다. 나는 남의 원고를 저자 몰래 읽지 않는다. 메모 한 장 주워 읽은 걸로 아직도 뜨끔한 사람이, 남의 제일 아픈 페이지를 검색으로 넘겨볼 수는 없었다. 노트북을 덮었다. 화요일에, 본인에게 듣기로 했다. 들려준다면.

✦ ✦ ✦
화요일 새벽의 세탁소에서, 나는 그 사람의 세탁물이 적다는 것부터 봤다.
셔츠 두 장. 수건 한 장. 앞치마가 없었다. 밀가루 얼룩을 두 달 동안 봐온 눈에는 그 부재가 크게 보였다. 앞치마를 빨지 않는 주는 빵을 굽지 않는 주다. 그 사람은 여느 때처럼 목례를 했고 여느 때처럼 2번 세탁기를 돌렸는데, 여느 때와 같은 것은 그 두 가지뿐이었다. 수첩은 꺼내지 않았다. 창가에 앉아서, 눈을 감지도 않고, 그냥 도는 드럼을 봤다.
나는 가방 안의 세제통을 만지작거렸다. 정산할 게 두 개네요, 하고 밝게 꺼낼 수 있는 새벽이 아니었다. 준비해 온 문장들이 전부 지난주의 문장이 되어 있었다. 지난주의 우리는 빚 갚기 놀이를 하던 사이였는데, 일주일 사이에 세상이 어른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침묵이 십 분쯤 돌았다. 모르는 사람들의 침묵도, 시작하기 직전의 침묵도 아닌, 세 번째 종류의 침묵이었다.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데 둘 다 순서를 미루는 침묵.
먼저 말한 건 나였다. 일주일 다듬은 문장은 결국 제일 짧은 형태가 됐다.
"봤어요. 통지서."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지지난 일요일 새벽에, 가게 앞까지 갔었어요. 불 꺼져 있었고, 유리문에 붙어 있었어요. 지난 화요일에는 여기서 사십 분 내내 그 얘기를 못 꺼냈고요. 그리고 목요일 낮에는… 골목에서, 어르신이랑 같이 있는 것도 봤어요. 모퉁이에서. 끼어들지도 못하고, 그냥 서서, 다 봤어요."
자백은 순서를 갖추자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 사람은 화를 내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아주 오래 나를 보다가, 처음 듣는 종류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까지 들었어요?"
"소문이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는 데까지."
"그렇게 됐네요."
"사실이 아니죠?"
내가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문장. 규칙 위반. 상관없었다. 그 사람은 드럼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텔에서, 마지막 해에 위생 사고가 있었어요. 디저트 파트에서. 손님 몇 분이 탈이 났고, 조사가 있었고, 파트에서 사람이 하나 나가는 걸로 정리가 됐어요. 나간 게 저였고."
문장들이 이상할 만큼 매끄러웠다. 몇 번이고 소리 내지 않고 연습한 문장의 매끄러움이었다. 사람은 제일 아픈 이야기를 제일 정돈된 문장으로 말한다. 정돈이 끝난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정돈해 두지 않으면 꺼낼 수조차 없어서.
"그러니까, 그게 그쪽 잘못이 아니었냐고요."
"…잘못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었어요."
파도 소리 위로 그 문장이 지나갔다. 잘못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나간 것은 이 사람이었다. 두 문장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물으려고 했다. 그때 벤치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화면이 위를 보고 있었다. 이름이 떴다. 임태오. 세 글자가 진동하며 벤치를 조금씩 기어갔다. 그 사람은 화면을 봤다. 받지 않았다. 진동이 멎을 때까지, 우리 둘 다 그 이름을 보고만 있었다.
"화요일이면 걸어와요, 이 전화는. 이 년째."
그 사람이 먼저 말했다.
"…안 받아요?"
"받으면, 사과를 받아야 해서요."
"사과를 왜 안 받아요?"
"사과를 받으면 그 애 잘못이 진짜가 되니까."
그 애. 두 글자에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임태오라는 이름의 사람은 그 사람에게 '그 애'였다. 잘못이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문장과, 사과를 받으면 그 애 잘못이 진짜가 된다는 문장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나는 교정자라서, 두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행간이 읽힌다. 다만 읽었다고 아는 척할 수 있는 행간이 아니었다.
이름을 붙이면 진짜가 된다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게에 이름을 안 붙이고, 나와 이름을 묻지 않고, 후배의 잘못에도 이름을 안 붙이고 있었다. 이 사람의 다정함은 구조적으로 자해였다. 나는 그것을 교정하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붉은 줄을 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저기요. 아까, 잘못한 사람이 따로 있다면서요. 그럼 어르신한테 그렇게 말하면."
"그 얘긴."
그 사람이 처음으로 내 문장을 중간에 잘랐다.
"…다음에요. 다음에 할게요."
수첩이 그날 처음 나온 건 그때였다. 그 사람은 수첩을 펴더니, 한 페이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찢었다. 구기지도 않고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찢겨 나간 자리에 남은 글씨의 유령을 봤다. D로 시작하는 글씨였다.
"디데이는 당분간 안 세기로 했어요."
"…게임은요?"
"게임도, 당분간."
당분간. 이 단어는 기한이 없는 단어다. 교정지에서 만나면 나는 이 단어에 연필로 표시를 한다. 언제까지인지 명시할 것. 하지만 지금 이 단어의 저자는 명시할 힘이 없어 보였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한 없는 문장을 그냥 두었다.
그 사람의 세탁기가 끝났다. 셔츠 두 장과 수건 한 장은 개는 데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탁, 탁. 군더더기 없는 동작만은 그대로였다. 그게 더 아팠다. 무너지는 사람의 손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고작 빨래 개는 순서라는 게.
문 앞에서 그 사람은 잠깐 멈췄다. 뭔가 말하려는 등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등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밀었다. 종이 딸랑, 울렸다. 두 달 동안 들어온 소리 중에 제일 얇은 소리였다.
내 세탁기 알림음이 울렸다. 열 번에 일곱 번 고개를 들던 사람은, 이제 여기에 없었다.
✦ ✦ ✦
금요일에 반찬가게에 갔다. 이번에는 핑계가 없는 걸음이었다.
"할머니. 그, 앞치마 총각이요."
"빵 냄새가 끊겼어."
할머니가 내 말을 받아채며 말했다. 콩자반을 담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새벽마다 골목이 훈훈했는디, 며칠째 아무 냄새가 없어. 가게 앞도 안 쓸어. 빗자루가 두 개 다 노는 골목이 됐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뭐라도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나를 봤다. 사십 년 장사한 사람의 눈이었다.
"아가씨는 뭘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뭘 하고 싶은지 말을 못 해서 못 하는 겨."
"…"
"건물주 영감은 내가 좀 알어. 무서운 사람 아니여. 무서운 척이 편해서 그러고 사는 사람이지."
"아세요? 어떻게요?"
"한 골목에서 사십 년을 살면 모르는 게 더 어렵지."
할머니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콩자반을 한 주걱 더 담았다. 이 골목에서 콩자반은 화폐이자 처방전이었다.
나는 봉지를 받아 들고 가게를 나왔다. 교정 불가능한 문장이 이 골목에는 너무 많았다.
✦ ✦ ✦
그리고 화요일이 왔다.
새벽 한 시 사십 분에 나는 빨래 바구니를 챙겼다. 빨랫감은 애매하게 모자랐고, 나는 수건을 하루 일찍 걷어 바구니를 채웠다. 세제통도 챙겼다. 이번에는 꼭 정산을 하자고, 밝은 목소리 연습까지 하면서. 지난주처럼 무거운 새벽이면 농담부터 하자고. 정산할 게 두 개라면서요, 이자 붙기 전에 갚으세요. 현관 거울 앞에서 그 문장을 두 번 연습했다. 서른한 살이 현관에서 대사 연습을 하는 것이 우스워서 조금 웃었고, 웃고 나니까 조금 덜 무서웠다.
달력의 동그라미는 오늘 자리에도 그려져 있었다. 몇 주 전의 내가 미리 쳐둔 동그라미였다. 그때의 나는 이 동그라미의 날이 어떤 날일지 모르고 그렸겠지.
달빛워시의 불은 켜져 있었다. 늘 켜져 있다. 누가 와도, 아무도 안 와도. 누가 언제 와도 불이 켜져 있다는 건 다정한 일이라고 나는 썼었다. 오늘 알았다. 그 다정함은 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작동하지 않는다.
2번 세탁기는 비어 있었다.
나는 4번에 빨래를 넣고, 벤치에 앉고, 교정지를 폈다. 한 줄도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 폈다. 새벽 두 시. 문에 달린 종을 나는 세 번쯤 잘못 들었다. 바람이었고, 냉장고 소리였고, 내 이명이었다. 두 시 십 분. 두 시 반. 골목에는 빵 냄새가 없었다. 벌써 며칠째 없다고 했는데, 없는 것을 이 코로 직접 확인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세 시에 내 알림음이 울렸을 때, 텅 빈 세탁소에서 나는 알았다. 고개를 드는 사람이 없는 알림음이 이렇게 큰 소리였구나.
나는 빨래를 개는 대신 오래 앉아 있었다. 가방 안에는 갚지 못한 세제통이 그대로 있었다. 정산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하는 문장이었다.
화요일 새벽, 그 사람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