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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로맨스

새벽 세탁소 — 제2화. 세제를 빌려드립니다

2026.08.07 발행 · 전 8
세탁기 위에 놓인 감색 앞치마와 접힌 메모

남의 앞치마를 일주일 동안 데리고 사는 일은 생각보다 성가시다.

처음 이틀은 현관에 걸어뒀다. 신발을 신을 때마다 감색 앞치마가 눈에 들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허리끈의 흰 얼룩과 주머니 속 메모를 생각했다. 사흘째에는 방으로 들여왔다. 현관은 먼지가 많으니까, 라고 나는 나에게 설명했고, 이번에도 설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나흘째에 나는 결국 그것을 빨기로 했다.

남의 옷을 함부로 빠는 게 실례인지, 빨지 않고 돌려주는 게 실례인지를 두고 나는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교정자의 고민은 대개 이런 식이다. 쉼표를 넣는 게 나은가 빼는 게 나은가.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하고, 고른 다음에는 그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 나는 빠는 쪽을 골랐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그 사람이 쓰는 것과 같은 세제여야 할 것.

아무 냄새도 안 나는 세제를 찾는 건 의외로 어려웠다. 동네 마트의 세제 코너에는 온갖 향이 진열되어 있었다. 라벤더, 코튼, 머스크,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침 숲'. 나는 진열대 앞에서 하나하나 라벨을 읽었다. 무향, 무형광, 무색소. 그 사람의 세제통과 같은 상표를 찾았을 때 나는 조금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세제를 찾아 십오 분을 쓰는 사람이 됐구나, 내가.

앞치마는 무향 세제로 빨아서, 그늘에 말리고, 수건을 덧대어 다렸다. 다림질은 오랜만이었다. 프리랜서에게 다려 입을 옷이란 거의 없고, 나는 내 옷도 잘 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남의 앞치마의 주름을 펴는 일에는 이상한 정성이 들어갔다. 허리끈 끝의 올이 풀린 자리를 발견했을 때는 반짇고리를 찾아볼 뻔했다. 찾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교정과 수선은 다르다. 남의 문장의 오탈자는 잡아도 되지만, 남의 앞치마의 올까지 잡는 건 월권이다.

메모는 원래 접혀 있던 선을 따라 도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접힌 선이 두 개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본 것을 안 본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본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는 있다. 그게 남의 문장을 훔쳐 읽은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문제는 그 메모가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정을 보다가, 보리차를 따르다가, 문득문득 계산을 했다. 메모를 주운 날이 D-43이었으니까 수요일엔 D-42, 목요일엔 D-41. 남의 카운트다운이 내 달력 위에서 저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무엇이 열리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것이 줄어드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배합이 이상한 한 주였다.

그리고 화요일 새벽이 왔다.

마주 앉아 대화하는 두 사람의 실루엣

✦ ✦ ✦

그 사람은 먼저 와 있었다.

골목에 들어설 때부터 알았다. 세탁소 통유리 너머로 창가 자리에 앉은 실루엣이 보였고, 나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한 번 고르고 문을 밀었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이 종소리를 의식한 것도 처음이었다. 두 달 동안 드나든 문인데.

2번 세탁기가 돌고 있었고, 그 사람은 수첩을 펴놓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 손에 들린 종이가방을 봤고, 그 안에서 감색 귀퉁이를 알아본 것 같았다. 나는 별수 없이 준비한 첫 문장을 잃어버렸다. 일주일 동안 여러 버전으로 다듬은 문장이었다. 두고 가신 게 있어서요, 는 너무 사무적이고, 이거 찾으셨죠, 는 너무 친한 척이고. 결국 입에서 나온 건 제일 밋밋한 것이었다. 나는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두고 가셨어요."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어요?"

"수요일에 알았어요. 찾으러 올까 하다가."

그 사람은 말을 끝맺지 않았다. 찾으러 올까 하다가, 다음에 무엇이 생략됐는지 나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 사람은 건네받은 종이가방에서 앞치마를 꺼냈다. 다림질 선이 잡힌 앞치마를 잠깐 내려다보더니, 별말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힌 메모지를 꺼내서, 펼치지도 않고 도로 넣었다. 나는 그 짧은 동작을 못 본 척하는 데 실패했다.

"봤습니다, 메모."

먼저 자백한 건 나였다. 변명이 길어지기 전에 사실만 말하는 것. 그것도 교정자의 버릇이다. 그 사람은 나를 잠깐 봤다. 화를 내려나, 생각했는데 돌아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그럼 이제 아는 사람이 생겼네요."

"…뭘요?"

"날짜가 하루씩 줄어드는 거."

그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자기 세탁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럼이 도는 소리 사이로, 나는 그 문장을 가만히 다시 읽었다. 아는 사람이 생겼네요. 불평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그 사람은 나를 쫓아내는 대신 자기 카운트다운의 목격자로 등록한 셈이었다.

"빨았어요, 앞치마. 무향으로."

"…같은 세제네요."

"찾는 데 십오 분 걸렸어요."

그 사람이 웃었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소리는 없었지만 입가가 분명히 움직였고, 나는 그걸 본 대가로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세제 계량컵의 눈금을 읽었다.

내 빨래가 돌기 시작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지난주와 같은 거리. 하지만 지난주와는 다른 침묵이었다. 지난주의 침묵이 모르는 사람들의 침묵이었다면, 오늘의 침묵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직전의 침묵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보리차를 담은 텀블러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그 사람이 그걸 보고 물었다.

"커피 아니에요? 이 시간에."

"보리차요. 커피는 사 년 전에 끊었어요. 밤에 일하는 사람이 커피까지 마시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서."

"밤에 일하시는구나."

"…지금 그거, 예 아니오 질문을 우회하신 건데요."

"규칙은 아직 안 만들어졌을 때인데요."

맞는 말이었다. 시제까지 정확한 말. 나는 교정지를 꺼냈지만 펴지 않았고, 그 사람은 수첩을 폈지만 적지 않았다. 세탁기 두 대가 도는 소리만 성실했다. 침묵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나는 안다. 원고를 사이에 두고 앉아본 사람은, 말이 없는 시간에도 문장이 오간다는 걸 안다.

먼저 깬 건 나였다. 나는 일주일 동안 만지작거린 질문을 꺼냈다.

"뭐가 열리는 거예요?"

"…"

"디데이요. 뭐가 열리는지는 안 적혀 있어서."

그 사람은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맞혀 보세요."

"네?"

"어차피 사십삼 일, 아니 이제 삼십육 일 남았으니까. 그동안 맞혀 보세요. 힌트는 이미 많이 갖고 계시고."

그렇게 이상한 게임이 시작됐다. 규칙은 그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추측은 일주일에 하나만 할 것.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은 금지. 정답은 열리는 날에 알려줄 것. 규칙을 정하는 동안 그 사람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많았다고 해봐야 한 문장이 두 문장이 된 정도지만, 두 달 치 과묵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건 수다에 가까웠다. 규칙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아니면 규칙이 있어야 안심하는 사람이거나.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빨래를 정확히 개고, 대화에도 계량컵이 필요한 사람.

나는 규칙을 하나씩 되짚으며 이 게임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게임은 삼십육 일 동안 매주 화요일에 우리가 여기서 만난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전제를 그 사람이 만들었고,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사람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으면서 서른여섯 개의 날짜를 약속했다.

"첫 추측, 지금 할게요. 빵집."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밀가루요. 앞치마에."

그 사람은 앞치마의 허리끈을 내려다봤다. 빨아서 얼룩이 옅어진 자리를. 그리고 고개를 들었는데, 표정이 미묘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을 보는 표정이라기엔 서늘하고, 틀린 사람을 보는 표정이라기엔 오래 나를 봤다.

"답은 열리는 날에요."

"방금 그 표정, 힌트로 칠게요."

"표정은 규칙에 없었는데."

"그럼 다음 주 전까지 규칙을 고치세요. 교정은 제 전문이에요."

말해놓고 아차 했다. 직업을 흘린 것이다. 그 사람은 놓치지 않았다.

"교정. 글 만지는 일이네요."

"…남의 글이요. 남의 글만."

"그래서 그렇게 남의 종이를 잘 읽으시는구나."

메모 얘기였다. 나는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관뒀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였다. 대신 나는 오래 참았던 다른 질문을 꺼냈다.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통성명이라는 단어가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말했다.

"이름은 묻지 않는 걸로 하죠."

"…네?"

"서로. 그것도 규칙에 넣죠."

"왜요?"

"이름을 알면 게임이 시시해져서요."

그건 대답이 아니라 대답의 모양을 한 다른 것이었다. 나는 교정자라서 그런 문장을 안다. 논리가 미끄러지는 자리에는 대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묻혀 있다. 이름을 알면 게임이 시시해진다는 건 문장으로는 성립하지만 이유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름과 게임은 서로 다른 문단에 사는 단어들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그 둘을 한 문장에 묶었고, 묶인 자리가 어색하다는 걸 본인도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캐묻지 않았다. 캐묻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규칙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사이에는 무게가 없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관계는 주소를 갖게 되고, 주소가 있는 것들은 언젠가 그 주소로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다. 나는 그게 무서워서 사 년 동안 아무에게도 새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이름 위에 종이를 한 장 덮어두기로 했다.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규칙에 동의하면서.

그 사람의 세탁기가 먼저 끝났다. 알림음. 그 사람은 빨래를 개기 시작했고, 나는 묻지 않기로 한 것 대신 물어도 되는 것을 찾았다.

"준비는 잘 돼가요? 그, 열리는 거."

개던 셔츠 위에서 손이 잠깐 멈췄다.

"자리가 문제예요. 건물주 어르신이 좀 깐깐하셔서."

"깐깐한 건물주라니, 소설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소설보다 더해요. 매일 새벽에 골목을 직접 쓸어요. 그리고 그 빗자루로 계약서도 쓸어버릴 기세고."

나는 웃었고, 웃고 나서야 그 문장 안의 피로를 눈치챘다. 농담의 문장은 완성되어 있는데 목소리가 반 박자 낮았다. 교정지에서라면 나는 그 문단 옆에 연필로 표시를 해뒀을 것이다. 어조 불일치, 확인 요망.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런 표시를 달 수 없어서, 나는 그냥 못 들은 척 웃어주는 쪽을 골랐다. 위로에 서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못 본 척뿐이다.

그 사람은 셔츠를 마저 갰다. 탁, 탁. 군더더기 없는 동작. 오늘도 빵 냄새가 났다. 세제 냄새 사이로 아주 가늘게, 따뜻한 것이 지나갔다. 나는 이제 그 냄새가 어디서 오는지 안 궁금한 척하는 걸 관뒀다. 궁금해하는 것까지가 이 게임의 규칙 안이니까. 그 사람은 가방을 메고, 문 앞에서, 이번에는 돌아봤다.

"다음 주엔 제가 빌릴 차례네요."

"뭘요?"

"뭐든요. 하나 정해놓을게요."

문이 닫혔다. 세탁소에는 나와, 도는 드럼과, 아주 희미한 빵 냄새가 남았다. 나는 첫 추측을 이미 써버린 것을 조금 후회했다.

창밖의 새벽 골목

✦ ✦ ✦

"직업 맞히기 게임? 너희 초등학생이야?"

다음 날 오후, 세영은 전화기 너머에서 어이없다는 소리를 냈다. 마감 원고를 넘기고 뻗어 있던 참에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소파에 누운 채로 어제 새벽의 일을 요약해서 보고했다. 절반쯤은 자진 보고였고 절반쯤은 심문의 결과였다.

"이름도 모른다며. 아직도."

"묻지 않기로 했어. 규칙이야."

"규칙이래. 다 큰 어른 둘이서."

"게임엔 규칙이 필요해."

"그래서 넌 뭐라고 부르는데, 그 사람을. 머릿속에서."

나는 잠깐 막혔다. 그 남자, 라고 부르고 있었다. 두 달 동안. 세탁소의 그 남자. 그런데 어제부터는 그 호칭이 조금 좁아진 느낌이 들던 참이었다. 그 남자,라는 말에는 아무 정보도 없는데, 이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생겨버렸으니까. 무향 세제. 각진 글씨. 계량컵 같은 말투. 깐깐한 건물주. 아는 것들은 자꾸 호칭을 요구한다.

"…그 남자."

"거짓말. 목소리가 반 박자 늦었어."

"하진아."

세영이 내 이름을 불렀다. 세영이 서하진, 도 아니고 야, 도 아니고 하진아, 라고 부를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건 세영이 농담을 끝냈다는 신호다.

"너 또 도망갈 준비부터 하지."

"…무슨 준비."

"이름도 모르는 사이. 딱 좋지, 너한테. 언제든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될 수 있으니까. 너 마음이 가기 전에 출구부터 확인하는 버릇, 그거 아직 있구나 싶어서."

나는 반박할 문장을 찾았다. 교정자는 남의 문장에서 허점을 찾는 사람이고, 세영의 문장에는 분명 허점이 있을 것이었다. 시제가 틀렸거나, 근거가 부족하거나. 나는 끝내 찾지 못했다. 세영은 삼 년 전의 나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마음이 깊어질수록 트집이 늘고, 트집이 충분히 쌓이면 그것을 이유서 삼아 떠나던 나를. 그때 세영은 네가 떠난 게 아니라 도망친 거라고 했고, 나는 일 년쯤 지나서야 그 교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지금 세영의 문장에 허점이 없는 건 당연했다. 원래 정확한 지적은 반박이 안 되는 게 아니라, 반박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대신 화제를 돌렸고, 세영은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줬고, 우리는 세영의 시댁 얘기를 십 분쯤 하고 끊었다. 끊기 직전에 세영이 덧붙였다. 다음 주에 뭐 빌려달라는지나 알려줘. 나 그거 궁금해서 일주일 못 기다려.

전화를 끊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다음 마감의 교정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빨간 색연필을 집었다. 그리고 교정지를 펴는 대신, 책상 옆에 걸린 달력을 봤다.

달력은 출판사에서 연말에 보내준 것이었다. 일 년 내내 마감 날짜만 적혀 있는 달력. 십칠일 마감, 이십사일 마감, 삼십일 최종 교정. 남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날짜들로만 채워진 열두 장. 그 사이에서 나는 다음 주 화요일 자리를 찾았다.

거기에, 동그라미를 쳤다.

사 년 동안 남의 문장에만 긋던 색연필이었다. 오탈자를 잡고, 군더더기를 지우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표시하던 빨간색. 그 색연필로 내 달력에 처음으로 그린 것이 동그라미라는 사실을, 나는 조금 오래 내려다봤다.

틀린 데를 찾는 색으로, 기다리는 날을 표시했다.

세영의 말에는 역시 허점이 있었다. 나는 출구를 확인하고 있지 않았다. 확인했다면 이 동그라미는 그리지 않았을 테니까.

본 소설은 창작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상호·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삽화는 AI로 생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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