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탁소 — 제7화. 이름을 묻다

노크를 했다.
문 앞에서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세 번쯤 반복했었다. 노크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동작이었나. 손등의 뼈로 나무를 두 번 두드리면 되는 일. 교정 부호 중에 제일 간단한 것보다 간단한 일. 그런데 그 두 번에 두 달과 두 주와, 어쩌면 사 년이 다 걸려 있어서, 손이 무거웠다.
두 번 두드리고, 손이 떨려서 세 번째는 못 두드렸다. 안에서 소리가 멎었다. 원래 무슨 소리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멎고 나서야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발소리가 왔다.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 문이 반쯤 열리고, 작업등의 주황빛을 등진 얼굴이 나왔다.
이 주 만에 보는 얼굴은 못 본 시간만큼 얇아져 있었다.
"…어떻게."
"콩자반 배달이요."
나는 반찬통을 들어 보였다. 준비한 문장 중에 제일 바보 같은 것이 제일 먼저 나왔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문장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뭔가를 무너뜨렸다. 그 사람은 문을 마저 열었다.
"…들어와요. 밖이 춥네요."
팔월 말의 새벽은 춥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그걸 알았고, 둘 다 모른 척했다. 틀린 문장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가게 안은 절반쯤 비어 있었다. 밀가루 포대가 없었고, 선반의 틀도 몇 개 뜯겨 벽에 기대어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종이상자와 테이프. 나는 그 광경의 뜻을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이 진짜가 될 것 같아서. 대신 반찬통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두 주 동안 다듬은 문장도 아니고 현관에서 연습한 문장도 아닌, 그냥 나온 문장을 말했다.
"다음에 얘기해 준다고 했잖아요."
"…"
"호텔이요. 지금이 다음이에요."
그 사람은 나를 오래 봤다. 그리고 종이상자를 하나 뒤집어 내 자리를 만들었다. 자기는 작업대에 기대서서, 불 꺼진 오븐 쪽을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일 아픈 이야기를 제일 정돈된 문장으로.
후배가 있었다. 스물여섯에 들어온 애. 손이 좋았고, 겁이 많았다. 마지막 여름에 호텔 연회가 겹쳐서 파트 전체가 이 주 동안 눈을 못 붙이고 일했다. 그 애가 무스 케이크의 보관 온도를 잘못 잡았다. 한 판 전부. 다음 날 손님 아홉 명이 탈이 났고, 호텔은 조사를 했고, 냉장고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 애는 계약직 이 년 차였고, 정규직 전환 심사를 한 달 앞두고 있었다.
"온도 설정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건 파트장 업무예요. 그날 나는 확인을 못 했어요. 연회장에 불려 가 있어서. 그러니까 절반은 진짜 내 책임이에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절반을 전부라고 말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전부 뒤집어썼어요?"
"조사실에서 그 애 얼굴을 봤는데, 사람이 반쯤 없어져 있었어요. 스물여섯이 평생 만질 케이크가 끝나게 생겼는데. 나는 십 년 했고, 나갈 데가 있었고. 계산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 계산에 그쪽 인생은 안 들어가 있었네요."
"…들어가 있었어요. 싸게 잡혀서 그렇지."
나는 웃지 않았다. 이 사람은 제일 아픈 자리에서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도 이제 알았다.
"사표를 내니까 소문이 따라왔어요. 사고 치고 나온 사람. 처음에는 정정하고 싶었는데, 정정하려면 그 애 이름을 말해야 하니까. 소문은 저 하나 접으면 끝나는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 와서 가게 자리 구할 때까지는, 실제로 끝난 얘기였고."
"근데 소문이 먼저 도착했고."
"어르신이 물으시는데, 대답을 하려면 결국 그 애 얘기를 해야 해서. 그래서."
"그래서 침묵을 골랐고, 침묵은 어르신한테 인정으로 읽혔고."
"…그건 각오한 부분이었어요."
"각오라는 말, 되게 성실하게 쓰시네요. 자기한테 불리한 쪽으로만."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인 문장들이 있고, 우리는 둘 다 그런 문장의 사용자였다. 나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게를 접고, 세탁소도 안 오고."
내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 사람이 나를 봤다.
"…세탁소는."
"두 번이요. 화요일 두 번. 나 거기 두 번 다 있었어요. 빨랫감도 없는데 수건을 하루 일찍 걷어서, 세제도 못 갚고, 알림음만 듣다가 왔어요.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요즘 그 앞치마 총각 안 오네. 그 세탁소에서 제일 말 없는 사람도 그쪽이 없는 걸 알아요."

✦ ✦ ✦
말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멈추는 법을 잊었다.
"나는요, 도망치는 사람이에요. 사 년 동안 한 번도 안 도망친 척하고 살았는데, 그건 도망칠 일을 안 만드는 방식으로 도망친 거였어요. 관계가 생기려고 하면 트집을 모아요. 트집이 모이면 그걸 이유서로 만들어서 — 아니다, 순서가 반대예요. 떠나고 싶어서 트집을 모으는 거예요. 방금 알았어요, 말하다가. 싸우지도 않아요. 싸우면 흔적이 남으니까. 삼 년 전에 그렇게 사람을 하나 잃었고, 그 사람이 회사 앞까지 찾아왔는데 안 만나줬어요. 그래놓고 잘 사는 척했어요. 남의 문장만 고치면서."
"…"
"그런 사람이 새벽 세 시에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핑계도 없이. 콩자반은 핑계가 아니라 배달이고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나 이번에는, 남고 싶어요."
작업등 하나가 우리 둘을 겨우 비추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서 있는 각도가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오븐 쪽이 아니라 내 쪽으로.
"…화요일에."
한참 만에 그 사람이 말했다.
"세탁소에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예요. 가면, 그쪽이 있을 거고, 있으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못 할 거고. 무너지는 걸 보이느니 안 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 다."
"그거."
"네."
"내가 사 년 동안 쓴 수법이랑 똑같아요. 저작권 소송 걸 뻔했네."
그 사람이 웃었다. 소리까지 나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이 주 만에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교정이에요. 돈 안 받을게요. — 책임지는 거랑 떠맡는 거는 다른 문장이에요. 그쪽은 절반을 전부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 애 절반까지 얹어서 자기를 벌준 거예요. 그거 다정한 거 아니에요. 그 애한테 사과할 기회를 안 주는 거니까. 잘못에 이름을 안 붙여주면, 그 애는 평생 이름 없는 죄를 갖고 살아요.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요? 이름 없는 것들이 제일 무거워요. 나 그거 전문가예요."
그 사람의 전화기가 작업대 위에서 진동했다. 우리 둘 다 화면을 봤다. 세 글자.
"받아요."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은 화면을 오래 보다가, 전화기를 집었다. 통화 버튼 위에서 엄지가 잠깐 멈췄고, 그리고 눌렸다.
"…어. 태오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반대편으로 갔다. 들리지 않는 곳은 없었지만 듣지 않는 자세는 있을 수 있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형이, 하는 울음 섞인 목소리가 전화기 밖까지 몇 번 새어 나왔고, 그 사람은 주로 들었고, 중간에 자기 사정을 처음으로 짧게 말했다. 골목의 위치와, 통지서와, 건물주 어르신까지. 이 년 동안 감춘 근황이 세 문장으로 정리됐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올 거면 와서, 나한테 하지 말고. 해야 할 데다 해."
전화를 끊고 그 사람은 한동안 전화기를 내려다봤다. 이 년 만에 받은 전화라고 했다. 이 년 동안 그 애는 걸었고, 이 사람은 안 받았고, 오늘 처음으로 신호가 연결된 것이다. 안 받는 것으로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과, 받아주기를 기다렸던 시간이 같은 이 년이었다는 게, 나는 좀 아팠다.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는 방식으로 서로를 놓친다.
"고마워요."
그 사람이 불쑥 말했다.
"받으라고 해줘서."
"통화료 청구할게요. 교정비랑 같이."
"…그거 안 받는다면서요."
"이자가 붙어서요. 두 주 치."
✦ ✦ ✦
집에 돌아온 아침, 세영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 전화가 없네.
— 어.
— 잘됐구나.
— 어.
— 죽 냄비는 천천히 줘도 돼. 근본 있는 집 냄비라 어디 안 가.
나는 그 문자를 보며 현관에 서서 조금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몸에 힘을 주고 있던 두 주가 한꺼번에 풀리면, 사람은 어딘가로 새는 모양이었다.
✦ ✦ ✦
그다음 주 토요일 낮에, 이름 없는 빵집에 다섯 사람이 모였다.
자리를 만든 건 금례 할머니였다. 수요일에 반찬가게에 들렀더니 할머니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 어떻게 아는지는 이제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 목요일에 강복만 어르신을 붙잡고 뭐라고 했는지, 토요일 낮에 어르신이 빗자루 없이 빵집에 왔다. 빗자루 없이 온다는 것이 이 어르신의 정장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할머니가 어르신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나중에 본인에게 들었다. 별말 안 했단다. "복만아, 너 옛날에 사람 말 안 듣고 종이만 믿다가 뭐 좋은 꼴 봤냐. 이번엔 귀로 들어봐라." 이 골목에서 어르신에게 반말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고, 그 하나가 움직이면 통지서도 기한을 미루는 것이었다.
임태오는 열두 시 정각에 왔다. 셔츠를 다려 입고,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문 앞에서 두 번 심호흡하는 게 유리 너머로 다 보였다. 스물여덟이라는데 스물둘처럼 보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들어와서 그 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가게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반쯤 빈 선반과, 종이상자들과, 꺼진 오븐을. 그 애 얼굴이 한 번 더 하얘졌다. 자기가 이 년 동안 침묵한 것의 실물 크기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이 증언이 잘못될 리 없다는 걸 알았다. 준비된 문장은 무너질지 몰라도, 저 표정은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증언은 서툴렀다.
"저, 그러니까, 호텔에서, 그, 온도를."
말이 자꾸 끊겼고, 순서가 엉켰고, 준비해 온 게 분명한 문장은 두 번째 문장에서 무너졌다. 어르신은 팔짱을 끼고 들었다. 재촉하지 않았다. 태오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이번에는 문장이 아니라 그냥 말을 했다.
"형이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그랬어요. 온도, 제가 잘못 잡았어요. 형은 그거를, 자기가 했다고 하고 나갔어요. 저 정규직 되라고. 저는, 저는 그걸 알면서 가만히 있었어요. 이 년을요. 그게 제가 한 일이에요."
가게 안이 조용했다. 태오는 고개를 못 들었고, 그 사람은 뭐라고 하려다가 관뒀고, 어르신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어르신이 처음 한 말은 태오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자네는 그걸 왜 말을 안 했어."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지. 나는 자네 어르신도 아니고." 어르신은 일어섰다. "말을 해야 알지. 사람이 종이가 아닌데, 안 적혀 있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읽어."
문 쪽으로 가다가, 어르신은 멈춰 서서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통지서는 없던 걸로 안 하네. 기한만 미루지. 그 안에 빵을 구워 와보게. 자네가 새벽마다 굽던 그거. 소문 말고 빵으로 판단하겠네. 나는 종이 아니면 입맛만 믿는 사람이라."
문에 달린 종이 울리고, 어르신은 골목을 쓸면서 돌아갔다. 태오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듯 상자에 앉았고, 금례 할머니가 어디선가 반찬통을 꺼내 태오 앞에 놓았다. 멸치볶음이었다. 이 골목의 화폐가 또 한 번 발행되는 순간이었다.
✦ ✦ ✦
밤이 되고, 다들 돌아가고, 가게에는 두 사람이 남았다.
태오는 저녁까지 남아서 상자를 다시 풀었다. 뜯었던 짐을 도로 푸는 일에 그 애는 이상할 만큼 진심이었고, 밀가루 포대 두 개를 어디서 구해 와서 원래 자리에 쌓아놓고서야 마지막 지하철을 타러 갔다. 가면서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누나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다음에 빵 사러 오라고 했다. 개업하면. 그 애는 개업하면,이라는 말에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서 도망치듯 갔다.
그 사람은 뜯었던 선반 틀을 도로 벽에 대보고 있었다. 나는 상자에 앉아 그 등을 보고 있었다. 드릴도 없이 손으로 위치만 맞춰보는 등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사람의 등. 창밖 하늘이 짙은 파랑에서 묽은 보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밤을 새운 것이다. 새벽의 사람들답게.
"게임, 정산해요."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이 돌아봤다.
"디데이의 정답. 이제 말해도 되잖아요."
"…빵집이요. 새벽 네 시부터 아침 아홉 시까지 하는. 첫 추측에 맞히셨어요."
"상품은요?"
"상품 얘기는 규칙에 없었는데."
"그럼 지금 정해요. 상품은, 질문 하나."
그 사람은 잠깐 서 있었다. 무슨 질문이 올지 아는 얼굴이었다. 알면서 도망치지 않는 얼굴. 나는 상자에서 일어나서, 두 달 동안 목까지 올라왔다 내려간 그 문장을, 이번에는 끝까지 올려보냈다.
"이름이 뭐예요?"
새벽빛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대답하기 전에 조금 웃었는데, 그 웃음이 이 주 치 얇아진 얼굴을 잠깐 원래대로 돌려놨다.

"도윤재요."
도윤재. 나는 그 세 글자를 받아서 입안에서 굴려봤다. 도, 는 단단하고, 윤, 은 둥글고, 재, 는 어딘가 재가 남는 이름. 오븐 앞에서 평생을 보낼 사람의 이름으로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두 달 동안 그 남자였고 그 사람이었던 자리에 이름이 들어앉는 순간, 세영의 말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관계는 주소를 갖게 됐고, 이상하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무서워할 시간에 부르고 싶었다.
"서하진이에요."
"알아요."
"…알아요?"
"택배요. 세탁소에서 한번, 바구니에 송장이 붙어 있었어요. 두 달 전에." 윤재 씨는 — 이제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 처음으로 좀 멋쩍은 얼굴을 했다. "이름을 묻지 말자고 한 건, 그래서였어요. 나만 알고 있는 게 반칙이라서."
"게임이 시시해진다면서요."
"그것도 반은 진심이었어요. 이름을 붙이면 진짜가 되니까. …그때는, 진짜가 되는 게 무서웠고."
반은 반칙의 자백이고 반은 그 시절의 진심이었다. 나는 두 개의 이유를 나란히 놓고, 둘 다 믿어주기로 했다. 사람의 규칙에는 대개 이유가 두 개다. 말할 수 있는 것 하나와, 나중에야 말할 수 있는 것 하나.
나는 웃음이 터졌다. 두 달짜리 게임의 마지막 패가 이거였다. 규칙을 만든 사람이 제일 먼저 규칙 밖에 있었다니. 웃다가 나는 가방에서 빨간 색연필을 꺼냈다. 교정지 여백에 쓰려고 늘 갖고 다니는 것. 남의 문장에만 긋던 것.
"윤재 씨. 어르신한테 구워 갈 빵 말인데요. 그 전에 하나 더 급한 게 있어요."
"뭐가요?"
"가게 이름이요. 간판도 없이 빵을 구우면, 어르신이 뭐라고 부르면서 드시겠어요."
윤재 씨는 빈 나무판이 있는 문 위쪽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작업대 위의 수첩을 — 찢긴 자리가 그대로 있는 수첩을 — 내 쪽으로 밀어놓았다.
"…같이 정해줄래요?"
나는 색연필 뚜껑을 열었다.